지난 주말 한국의 주요한 일간지 중 하나인 동아일보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왔다. 통계를 낼 때 소위 ‘퍼센테이지’라는 것이 있는데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통계학”이라는 전문적인 학문이 있었다. 그리고 이 통계는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제품의 인기도를 살피기 위해, 선거철에는 후보지지율을 살피기 위해, 또는 정책을 세우기 위해 통계를 사용한다.
하지만 통계는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의 일부분을 인용해 보자. “어떤 상품의 가격이 100원에서 150원으로 올랐다고 할 때 인상률은 얼마일까? 인상률을 계산할 때는 원래 가격을 기준으로 퍼센트를 계산해야 한다. 왜냐하면 원래 가격보다 몇 퍼센트가 올랐는지가 관심의 대상이자 나타내려고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르게 계산하면 인상률은 50%(50/100)다. 그러나 이 50%의 인상률은 소비자들에게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때 속임수를 쓰면 인상률을 낮출 수 있다. 퍼센트를 계산하는 기준만 살짝 바꾸면 된다. 즉 분모를 원래 가격(100원) 대신에 오른 가격(150원)으로 바꾸면 인상률은 33% (50/150)로낮아진다. 이렇게 하면 실제로는 50%인 인상률을 33%로 낮춰 발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속임수가 있는 통계가 사람의 인격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같은 기사 안에는 미국의 유명한 존스 홉킨스(볼티모어) 대학이 한 때 불명예는 물론 교수들의 인격인 손상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여학생의 33.3%가 교수와 연예]라는 통계 때문이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들은 남녀공학인데, 대학에서 여자를 학생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남녀공학이 되면 생기는 단점을 존스 홉킨스대학의 예로 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처음 3명의 여자들이 이 대학에 입학을 했고, 그 학생들 중 한 학생이 교수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33.3%가 교수와 연애를 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험담인가 말이다.
이런 모습이 우리 생활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아니 속임수가 있고, 잘못된 의도를 가진 통계를 따라 성도들을 매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거짓말을 하는 죄와 형제를 아프게 한 죄를 지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한다. 직접 보고 들었다 하더라도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되는데, 하물며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은 것을 “그랬다더라”는 추측성 발언을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