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나를 만드신 후에 여기저기에서 나를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훈련을 시키셨다. 그리고는 이곳을 맡기셨다. 그럴 듯한 곳이다. 처음에는 내가 괜찮은 녀석인 것 같아서 이곳을 맡기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위에 무거운 가방을 올려 놓는 사람이 있었다. 아예 내 위에 걸터앉은 사람도 있었다.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나는 멋있는 주인이 만드시고 이곳을 맡겨 주셨는데 감히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나마 이 정도는 견딜 만했다. 내 위에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발길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 이렇게 생겼냐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님, 나 다른 곳으로 옮겨 주세요.”
나를 만드신 주인은 묵묵부답이셨다. 또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지치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옮겨 보려고 몸부림도 쳐봤다. 시간이 갈수록 나 자신이 깨져 가기 시작했다.
“이곳을 네게 맡기려고 너를 이곳에 세웠다.”
어느 날, 내 귀에 속삭이는 부드럽고 엄중한 음성이었다.
“네.”
더는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똑같이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다. 침을 뱉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발길질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다. 내 마음이다. 주인이 나에게 이곳에 있으라고 하신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주인이 있으라고 하시니까…
변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나는 계속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깨져 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묵묵부답이다. 주인을 향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주인이 있으라고 하시니까…
어쩌면 내 몸이 깨진 후에 주인은 고쳐 주실지도 모른다. 주인은 짐이 가벼운 곳으로 옮겨 주실지도 모른다. 아니면 주인은 나를 폐기처분 하실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내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내가 바라는 것은 없다. 그냥 주인의 처분을 바랄 뿐이다. 내게 있어 선택은 사치다. 그 어떤 처분을 내리시는가 해도 불평도 할 수 없다. 내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명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이곳에 서 있는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금이 가는 소리는 나의 기도 소리다. 깨지는 소리는 나의 찬송 소리다. 부서지는 소리는 내 기쁨의 소리다.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주인이 있으라고 하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