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 선교사

정은실 선교사는 1982년 아내와 세 아들을 데리고 볼리비아 싼타크루스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그 당시 기독교 인구가 0.2%였으며, 남미에서 가장 가난하고 공산주의 정권하에 인권 탄압이 심한 나라에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위암으로 사경을 헤매었으며, 12살 된 큰 아들도 40도가 넘는 날씨에 아버지를 도와 학교 건물을 짓다가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유행성전염병, 영양실조, 과로합병증이 겹쳐서 40일간 입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비는 하루치밖에 없었다. 그때 정선교사님은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엎드려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선교하다가 순교하면 내가 할 일이지, 왜 애꿎은 내 아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쓰러져야 합니까? 하나님,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둬주시옵소서.” 그런데 병상에 누워있던 아들이 “아빠, 나 다 나았어요.”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펄펄 열이 끓던 아이가 멀쩡하게 걸어 나가자 의사들이 깜작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아들이 지금 의사가 되어 아버지와 함께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이런 고난과 시련 속에서 정 선교사는 이미 40여 개 교회를 세웠고, 2천5백 명이 공부하고 있는 볼리비아 기독교 종합대학을 세웠으며, 특별히 남미에서 의과대학이 유명한 대학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볼리비아에서 상장과 감사패를 66개나 받았고, 2003년에는 연세대학교 ‘언더우드상’ 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미국 상원의 ‘사회봉사상’ 을 받았다. 그리고 2017년에는 그가 세운 의과대학 졸업생 중 500명의 의사들이 브라질에서 명의로 봉사하고 있는 공로로 브라질 개국 이래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독립기념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앞으로 450병석의 병원을 건축하고, 2000명 기숙사를 건축하고, 325시에 새마을운동을 펼치고, 1000교회 건축을 하고자 하며, 이미 자립정책으로 자립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확장시키고자 한다.

정은실 선교사는 신문기자의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줄 믿는다. 오늘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금까지 선교를 감당해왔습니다. 주님께서 저로 실족하지 않게 하시며 저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그 분은 항상 제 우편에서 제 그늘이 되어 주셨고, 낮의 해가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해치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저와 저의 가정을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제 영혼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영원까지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이 글은 문병하 목사의 ‘예화 공작소&충전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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