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우상숭배(이사야서 44:14-20)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는 한심한 인간들에 대하여 지적을 하신다. 우상숭배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모습을 자기를 위하여 나무를 자르는 행위를 묘사한다. 인간이 나무를 관리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자기가 숭배할 나무를 관리하는 것이다. 그 나무는 영원하신 하나님에 의해 심겨진 나무들인데 나무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나무를 숭배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볼 수 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우상을 준비하는 단계를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다. 오늘날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우상숭배의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고 있지 않다. 본문에서 인간이 나무를 키우는 것은 모든 나무를 우상으로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중의 절반은 우상을 만들기 위해, 나머지 절반은 일상생활을 위한 것이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땔감으로 사용하는 나무를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이다.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참 본성에 관하여 깨닫지를 못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한심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생각도 없다”라는 것은 참된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셋째, 스스로 속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만든 신(우상)이 자기를 지켜 줄 것이라고 속고 있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거짓이며, 그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암시해 주고 있어서 그것을 의지하는 자의 희망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가 아닌 헛된 우상을 간직하고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