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선교사역 보고-곽동원선교사

<연해주 선교보고>

오늘도 하루 종일  노보니콜스크,보리소프카,그리고 우리 고려인 여장부 ‘장 아니스타’ 농장이 있는 꼴사코프카와 까꼬로프카를 돌아보고,김 베체슬라브 집으로 이동하다가, 구름이 낮게 내려 않은 울리토프카 평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차를 멈추었습니다. 봄비가 오려는지 눅눅하고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광활한 대지는 여전히 풍요로운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편안한 평화스러움으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며칠 전 단기선교팀이 처음 오셨을때만해도 웅성거리듯 새싹이 돋던 연보라빛 숲들이, 이젠 제법 연한 잎새들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여 출렁이는 아름다운 오월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흐릿한 저녁 노을 아래로 방금 다녀온 장 아니스타 농장이 있는 꼴사코프카 지역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장 아니스타!

13년전 중풍걸린 남편과 자식들을 거느리고 황무지에 감자를 경작하던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선임 김동학선교사의 도움으로 힘들게 자립하여 이제는 우스리스크 일대에서 150ha의 임대 농지에 감자를 심고,
철제 비닐하우스 15동을 설치해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는 앞서가는 영농인으로써, TV에도 출연해서 농지개혁을 요구하기도 했던 억척스런 여장부 입니다. 제가 이땅에 발 디딘 이후, 딸 베로니카 부부와 함께 꽃재배를 시작하여 봄철이면 시장에 꽃 판매 부스만 10여군데 운영하고 있고,재작년 한국정부 지원금으로 비료 생산을 목적으로 소,돼지,양을 기를 축사를 지어 돼지 250마리,소 40여 마리, 양과 염소 50여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엔 일부 상환했던 자금을 재 융자 받아 건초를 추수 할수 있는 농기계를 구입하여 800여개의 건초를 생산 저장하였다가 농한기에 판매하는등,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는 현지인이 아니라 선교사들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자랑스러운 여인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모든것이 잘 되어 가는줄 알았습니다.

작년 가을, 가족들의 우환을 돌아보고 사역의 재정비를 위해 미국에 돌아 가서도 그런줄 알았습니다. 이제 봄이되어 꽃 재배 농가 현황과 내년도 종자 주문,그리고 지원 가정 상환 형편을 살피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오는 길에
파송교회에서 제 사역의 격려차 세분이 단기 선교팀으로 함께 동행 하셨습니다. 가는곳마다 비닐하우스안에 잘 자란 꽃들이 가득 차 있었고,성공적인 꽃농사에 들떠 있는 지원 가정들과, 제가 출석하는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성도들의 따뜻한 환영에 모두들 하나님의 은혜라고 기뻐하고 있는 중이였습니다. 잠시 가시적인 사역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주시는 단기선교팀 권사님들의 덕담에 취해 있는중에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을 다음 방문지인 장 아니스타 농장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이 파여져 보수가 안된 도로를 한시간을 달려 장 아니스타의 농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말이 농장이지 손이 닿지 않아 이곳 저곳 방치된 낡은 농기계들과,이곳 저곳 흩어져 썩어 가고 있는 씨 감자들, 동물 사료등 정돈되지 않은 환경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갑작스레 전화로 알린 우리의 방문이므로 농장 미화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단기선교 팀에게 설명하면서도 우리 고려인들의 끈질긴 생존본능을 보여줄 장 아니스타를 자랑스레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 바쁘게 움직이는 인부들의 모습속에 열악한 현실속에 애쓰고 있는 장 아니스타의 수고를 느끼며 작년말에 추수하여 판매하다 남은 건초장을 지나 축사에 이르를 즈음,축사 앞에 있는 꽃 재배 비닐하우스안에서 작업하던 장 아니스타가 달려 나왔습니다. 일행들이 함께 동행중임에도 온 몸에 흙을 묻힌 그녀가 저를 힘껏 끌어 안았습니다. 잠시 말없이 나를 안았던 팔을 풀던 그녀가 눈가에 번진 눈물을 닦으며 심한 함경도 사투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선교사님! 왜 이리 늦게  왔소?”

“왜 그래요? 무슨일이 있었어요?”

그녀가 안내한 축사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장 아니스타의 눈물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올 일월에 내 모든게 불타버렸소. 아직도 화염속에서 타  죽어가며 울부짖던 가축들의 비명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잠을 잘수 없어요.”

시야에 펼쳐진 미처 철거 하지못한 불탄 축사의 잔재를 보며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가늠할수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한국정부에서 지원된 자금으로 축사를 건축하며,현장을 방문한 블라디보스톡 총 영사관 점검단에게 자랑스럽게
보고했던 그 축사가, 가축 분뇨 비료 생산을 해보지도 못하고 흉칙하게 숯기둥만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방화에 의해 소,돼지,양,염소,닭,거위 모두다 불타 죽었소.밤에 일어난 일이라 손을 쓸새가 없었소.”

단기 선교팀으로 방문하신 권사님들도 안타까움에 “어떡하면 좋아,어떡해”를 되뇌이셨습니다.

한참을, 우리는 참으로 한참 동안을 그 불타버린 폐허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또다시 가축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떨쳐 버리려는듯 조용히 머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스타!손님들 미국으로 돌아가신 후에 내가 다시 오겠어요”

그녀는 워낙 강한 여자 였습니다. 최근엔 일이 바쁘다는 핑게로 교회 나오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었지만,저희들의 지원 초기엔 젊은 목회자 이기영 선교사와 자신 소유의 건물에 교회를 세우고 인부들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도 했습니다. 작년 여름 오랜 중풍으로 누워 지내던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후에도, 새벽부터 밤늦도록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며,감자와 오이 토마토,야채 모종과 꽃재배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원래 카작스탄에서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건물에서 치료소를 운영할 꿈도 갖고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엔 농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8가정이 거주할 숙소도 건축하여, 일꾼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꽃시장에선 대량 재배한 꽃을 판매 하기위해 여러 마을 시장에 판매장을  설치하여 주변의 같은 업종
소규모 재배자들의 원성을 사는 일도 있었습니다. 팔다 남은 꽃들은 인근 시청에 무상 기증하여 시내 로타리마다 그녀의 꽃들로 조경이 이루워 지기도 했습니다. 비지네스 규모를 더 이상 키우지 말고 재배 작물의 질을 높이라고 권유 하여도 “올해 까지만 ,올해 까지만…..”하며 일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벅차게 일을 벌려 놓았다 시련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 앉은 그녀의 현실을 보며,선교사들과 함께 영농을 시작 할때의 초심을 잃어 가던  장 아니스타를 기억 했습니다. 살길이 막막할때 바라보며 매달리던 선교사들의 하나님으로부터,사업이 번창하므로 바쁘다는 핑게로 교회출석을 걸르는 일이 늘어나면서 내가 할수 있다는 교만으로 멀어지던 그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 하는자는 여호와 시니라.잠언 16:9”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써 나느니라.잠언 16:1”

그녀의 슬픈 좌절을 바라보면서,2기 사역을 준비하며 침잠해 있는 나 자신을 돌아 보았습니다. 저의교만 또한 장 아니스타의 처지와 다를게 없었습니다. 후원자들의 도움과,한국 정부의 고려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원 받은 자금으로 사역 하면서 마치 내가 그들을 돕고 있는듯 착각하고 행동할때가 많았습니다. 우리 고려인들이 땀흘려 키운 꽃 농장을 돌아보며 마치 내가 키운 꽃인양 흐뭇해 하기도 했습니다. 내 사역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비판 하기도 했습니다. 몇번의 동역자 관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의 당위성만 주장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였습니다. 외관적으론 많은것을 이룬듯 하지만 체계적이지 못하고 즉흥적 감상적 사역의 연속이였습니다. 기도보다 행동이 앞섰고,하나님의 사역임에도 누군가가 내 사역에 기웃거리면 날카롭게 방어의 벽을 세웠습니다. 사역의 투명성을 강조 하기위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고 창의적,생산적인 사역을 거부 했었습니다.

아!그랬습니다.

잘 나갈때 속도를 줄이되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시간.

매일 매일 그분의 영적 인도 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진하는 사역.

작은 성취에도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는 겸손한 마음.

그럴듯한 내 사역의 모습이 부러운 이들을 품고 가지못한 이기적인 모습.

하나님이 아니시면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마치 비속을 달리던 엘리야 처럼(열왕기상 18:46} 기쁨을 맛 보다가, 시련이 오면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하던 엘리야 모습처럼(열왕기상 19:4) 일관성 없는 내 신앙의 기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 오전에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 가시는 단기선교팀을 공항에서 배웅 하고, 곧 바로 차를 돌려 꼴사코프카 장 아니스타 농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비닐 하우스안에서 물을 주고 있던 장 아니스타가 꽃재배장으로 나를 인도 하였습니다.

“이 겔기나(다알리아) 예쁘게 피는것 좀 보오.작년보다 잘 키우지 않았소?”

다행히 꽃모종은 잘 자라고 있어서 힘든 상황속에서도 장 아니스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 올랐습니다. 2016년도 재배용 꽃씨를 주문 받는 동안,화재로 멍들었던 그녀의 가슴에 또 다시 희망의 불꽃이 피어 오르는듯
열심히 꽃씨 카달로그를 살펴 보던 그녀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내년에는 꽃 재배를 배로 늘리고 꽃에 전념 하겠소.난 다시 일어나야 해요.내 가족들과 내 농장에서 일해야 먹고 사는 20여명 삯꾼(러시안 일꾼)들이 나만 바라 보고 있소”

다시 교회 생활에 충실하라고 충고할 타이밍을 기다리던 내가 그녀에게 대답 했습니다.

“아니스타!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과 일꾼들을 위해 당신이 존재 하듯이,당신이 하나님에게 당신의 사업의 경영을 의지하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꺼예요.사업의 성취를 위해 삯꾼들을 거칠게 부리지 말고 함께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 가세요. 지금 까지 처럼 열심히 하시되 하나님보다 나를 앞세우지 마시구…..올 봄에 상환할 융자금은 다시 재기하신 후에 상환 하세요 “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앞에 설것이요 천한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언 22:29”

내말을 듣던 그 거센 여장부 장 아니스타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선교사님이 미국으로 떠나고 일월에 화재를 당했을때 잿더미에 주저 앉아 선교사님를 생각 했소. 남편 죽고 아이들과 같이 악착같이 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나님 원망을 선교사님께 하고 싶었소. 아니…..같이 울고 싶었소.”

꽃씨 주문을 마치고 농장을 빠져 나오는 저에게 그녀가 소리 쳤습니다.

“선교사님! 고맙소.꼭 다시 일어 나겠어요.”

저물어 가는 울리토프카 평원 언덕위에서, 방금 헤어진 장 아니스타의 농장이 있는 꼴사코프카 지역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선교의 정의가 선교사란 이름으로 이땅에 와서 고려인들에게 신앙적,현실적으로도움을 주어 하나님을 믿게 하는것이라면 그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용하실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요? 우리를 선교사로 파송한 후방에서는 선교사란 선교지에 뼈를 묻는자,또는 현지에 끝까지 버티고 생존해 살아 가는자 라거나 넉넉하게 좋게 표현해 주시는 분은 그냥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자라고 말 하기도 하시고, 때론 선교지에 나간 결단만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신다거나,대단한 신앙심의 정점에 선듯이 칭찬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위한 생존 능력과 더불어 그들을 도울수 있는 물질과 영적 Power를 갖추고 필요할때마다 멋지게 사용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 아니스타 말고도 주정뱅이 외삼촌을 죽이고 과실치사로 감옥에 있는 외아들 옥바라지를 위해 반찬 장사로 늙어 가는 아리온 어머니와, 꽃재배를 통해 살림이 안정되어 이층 유리온실까지 짓고 희망에 들떠 있던 윤예브게니의 아내 마흔 아홉살 라리사의 폐암 말기투병과,어린 나이에 양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해 아들 둘을 낳고,어머니에게 맞아 한쪽눈을 실명한 채로 거리를 떠돌다 노름쟁이 키르키스탄 남편을 만나서 천사같이 예쁜 아이 다섯을 낳곤 먹일것이 없어 울부짓는 안젤리카의 눈물은 어떻게 닦아 주어야 하나요?

저에게 있어 곽동원선교사는 역시 개뿔입니다. 내가 도울수 없는 현지인들에게 해줄 도리가 없는 안타까움에 함께 하소연 들어 주고, 함께 피눈물 흘리며 울수밖에 없는 그 무능력의 밑바닥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외마디로 부를수 밖에 없는 개뿔 선교사 입니다. 그러나,내가 잠시 선교지를 떠나 있는 동안 일어난 재앙의 불구덩이 가운데서,그 누구보다도 이 누추한 개뿔 선교사를 떠올렸다는 한과부 여인의 고백이 저를 이땅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임을 확인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가 뿌리기 시작하고 가까운 마을 울리토브카의 낡은 목조 가옥에 하나둘 백열등이 켜지는 이유모를 아늑한 풍경 사이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전쟁을 통해 사랑과 이혼과 재산을 잃은 고통속에서 고향 “타라”로 돌아와 불타버린 들판에 서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라고 눈물로 외치던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증인이야! 난 결코 주저 앉지 않을꺼야. 이 모든것을 극복해서 다시 배고프지 않을꺼야.하나님께 맹세코 다시 굶주리지 않을꺼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꺼야.”

장 아니스타! 울지 말아요. 당신의 재기를 위해 내일은 내일의 하나님의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를 꺼예요.

2015년 5월  러시아 연해주 에서

곽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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