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2012년 6월, 크리스챤 투데이 기고 칼럼)

지난 5월, 여수박람회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을 때 서울에서는 “제9회 서울디지털포럼”이 열리고 있었다.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유명한 기업의 총수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예를 들면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세계 최대 IT 연구소인 벨 연구소 김종훈 사장 등 세계적 명사 65명이 참석한 국제적인 행사였다.

그런데 이번 포럼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포럼의 주제어였다(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바로 “공존” 또는 “집단 공존”이었다. 언뜻 처음에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통하여 조금은 이해하는 듯 하였다. 예를 들면, 힙합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노래를 무료로 다운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하고 리믹스(재편집)를 할 수 있도록 인터넷 상에서 허락을 한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공존”을 이렇게도 설명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를 디지털 애완동물이 들을 수 있도록 해서 의사소통을 이루게 하는 사람과 기계와의 공존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존”이라는 화두가 대두된 것은 인터넷의 발달, 그리고 SNS의 발달로 무궁무진한 정보가 흘러다니고 있는데, 이런 무한의 정보를 하나로 또는 함께 묶어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내고자하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얼마 전에 대두된 “상생하는 사회”라는 주제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았다. ‘공존’의 리더십이 기업의 성공 비결이자, 디지털 시대의 발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워런 이스트(ARM CEO)는 “지난 20여 년간 저희 성공의 원천은 파트너십입니다. 승자 독식을 추구해 성공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참석자들 사이에서 디지털 기기에서 소외된 세계 90% 인구와 공존할 수 있도록 IT 기업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마치 “공존”만 21세기를 살리고(21세기 시작이 신음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미래를 만들어갈 필수 가치이자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존”이라는 좋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웬지 허전함을 버릴 수가 없다. “공존”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알다시피 “함께 존재한다”는 뜻인데 과연이 이렇게 하면 정말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몇 가지의 문제점을 짚어보려고 한다. 물론 필자에게 대안은 없다. 하지만 겉만 멀쩡한 채로 던져져 땅에 떨어진 사과에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첫째, “공존”을 이야기하는 사람, 최소한 이번 포럼에 참석한 명사들은 서민들의 사정을 정말 알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공존을 이야기하는 큰 회사의 CEO가 자신의 연봉을 줄여서 몇 사람의 직원을 더 채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둘째,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디지털 기기에서 소외된 세계 90%의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의 터전도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정말 물질문명과 디지털 문명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셋째,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지구온난화로 녹아 내리는 북극의 빙산과 줄어드는 남극 대륙의 면적은 정말 생각을 해 보았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디지털화 되려면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연환경은 파괴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넷째,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이익보다 소기업 또는 일반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보았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 포럼에서 이야기하는 공존에는 얼마나 많은 자신의 희생과 손실을 예상하며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진정한 공존이 무엇일까”라는 감당하지도 못할 질문을 던지지는 않겠다. 다만 만일 예수님께서 이 포럼에서 “공존”을 이야기하신다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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