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겸손도 포함되지만 공동체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곧, 예수께서 삶에서 보이신 겸손은 공동체에 주어진 질서에 순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겸손은 금욕주의적 겸손과 철저하게 다르다. 사실, 골로새서를 보면 금욕주의적인 겸손은 기독교의 원수임을 알려준다(참조, 골 2:23).
금욕적인 겸손은 교만의 위선적인 면이다. 이러한 금욕적인 겸손의 특징은 복장이나 목소리나 태도를 겸손하게 보이게 한다. 그런데 어떤 이해 타산적인 사건이 발생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면 교만을 드러내며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겸손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는”(벧전 2:23) 겸손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항상 기억하면서 권위 질서에 대한 순복을 요청한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순복을(벧전 3:1), 사환들은 주인들에게(벧전 2:18), 백성들은 왕에게 (벧전 2:13), 그리고 교회에서 젊은이들은 장로에게(벧전 5:5) 순복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겸손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 질서에 대한 순복임을 말한다.
이때 베드로는 “이와 같이”를 계속 되풀이 하는데 이는 “예수님같이”라는 말이다. 요약하면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공동체에서 권위 질서에 따르는 마음 자세다.
예수께서는 악한 나라와 악한 사회 속에서 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권세가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줄 아시고 믿고 따르셨다. 그 순종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다. 이 순종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시의 권세가 악한 권세임에도 순종한 것이다. 이에 우리의 겸손은 스스로 겸손한 척하는 신비적이고 관념적이며 피상적인 겸손이 아니라 가정, 교회, 직장, 사회에서 권위 질서에 실제로 순복하는 참된 겸손이 되어야 한다.
(위의 글은 황스데반 목사님으로 허락을 받고 페북에서 옮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