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가 있다. 시인이며 국어교사인 박일환이다. 이 친구는 늘 얌전했고, 장학생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학구파 친구다. 이 친구는 가끔씩 엉뚱한 발상을 하기도 하는데, 그 성격이 그가 쓴 책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한국의 대표 국어사전에 실수가 많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미친 국어사전”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우리말 놀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다. 지난 우리말 놀이 9회와 10회에서는 술과 관련된 글을 올렸다. 술을 못마시는 나도 재미있게 읽었고, 많은 상식을 얻게 되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술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예를 들면, “아들을 낳았다고 한턱내는 술인 생남주는 있는데, 딸을 낳았을 때 내는 생녀주라는 건 없군요. 딸들의 신세가 서러울 수 있겠습니다”라고 썼다. 이런 이름은 생전 처음 듣는 술이름이다. “진서술.” 이것은 전라도에서, 머슴을 위하여 주인이 부모를 대신하여 관례(冠禮)를 행할 때에 쓰던 술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친구는 자기 생각에 가장 정성이 담긴 술이 있다고 했다. 바로 “포양주[抱釀酒]”로서 술을 담근 술독을 사람이 안고 그 체온으로 익힌 술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 단어를 보면서 문득 사람이 사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 가운데 실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말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게 성의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 술을 익히기 위해 품어 안는 자세는 정성이 담긴 자세임에 틀림이 없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삶을 성의있게 사셨을 것이다. 외아들을 잃은 과부에게, 열병으로 고생하는 나이 든 아낙네에게,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걸인에게, 나쁜 짓을 하다가 잡혀 온 더러운 여인에게까지. 예수님은 성의를 다해 대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셨다.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을 때에도 성의를 다하셨다. 산에서 또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도 성의를 다하셨다.
우리가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들이라면 우리의 삶이 성의있는 삶이 되어야 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한다. 주인의 기쁨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