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을 돌아보는 교회

이희성목사님은 몇 년 전, 저희 교회 “한 여름밤의 찬양축제”에 오셔서 찬양과 말씀을 전해 주신 목사님이며, 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글을 올립니다. 제목은 편집자가 붙였습니다.

오늘 집에 오는길, 신호 대기중에 주유소 앞에서 고장난 차를 밀고 오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한명이 밀다가, 어디선가 모르는 사람들 여럿이 달려들어 함께 밀더라. 주유소 안으로 들어서자, 서로 인사를 하며 제각기 가던 길을 가더라. 당황했을 운전자가, 얼마나 감사했을까?

잘 달릴 때는 문제 없다. 그냥 타고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고장이라도 나서 차가 멈춘다면 당연히 모두 내려서 필요한 곳 까지 함께 도와 밀고 가야한다. 모르는 이들도 함께 와서 돕는 마당에, 차에 탔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동참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 이런 모습이 전혀 없다. 잘 달리는 차에는 슬쩍 슬쩍 올라타서는 편안한 승차감을 즐기다가도, 뭔가 차에 문제라도 발견이 되면 내려서 밀기는 커녕 앉은채로 누군가가 돕겠지 하며 방관하던가, 아니면 주위에 더 잘 달리는 문제없는 차를 찾아다시 그들의 몸을 옮겨 싣기 일수이다. 주위를 보라. 오도 가도 못하는 고장난 교회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금만 서로 힘을 합쳐 돕는다면, 다시 달릴 수 있는 교회들도 상당수 될 것이다. 하지만 고장난 차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다들 구경만 한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씽씽 잘 달린다고 너무 자만하지 마라. 고장나서 서있는 차들을 보며 비웃거나 조롱하지도 마라. 그 차도 지금 멈춰 선다면 모두가 내려서 밀어줄 거라고 장담할수 있는가? 하긴, 운전하던 이들조차 잡았던 운전대 놓고 멀쩡한 딴차에 옮겨 타려 하더라.

기도하고 교회를 정한다고? 하긴 기도를 하긴 하더라. “주님! 내게 좋은 교회 허락하소서. 말씀 잘 전하는 목사님, 모든것이 잘 갖춰진 편안한 환경의 교회를 만나게 해주소서”라고. 교회를 정하는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 나를 보낼만한 곳에 보내소서. 내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소서.” 이런 기도가 바른기도, 멋진 기도일 것이다.

왜 재주가 있다는 사람들은 죄다 잘 달리는 교회로 모여드는 것일까? 여름, 선교의 계절, 먼 곳, 외국으로만 눈길을 돌리지 말고, 자립이 버거운 주위의 교회들에게도 관심을 좀 갖자. 아파트 랜트비 낼 돈이 없어 새벽마다 울부짖는 목회자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 가난해서 놀이공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목회자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단 백 달러라도 그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 보시길.

하나님의 교회는 두 개일 수가 없고, 내 교회만 내 교회일수도 없다.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고, 동시에 모든 교회가 내 교회가 되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들에게 들려질 지어다.

20180226_0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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