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하더니 유럽발 경제위기로 인하여 다시 세계 경제가 주춤하는 현상이다. 유럽발 경제위기는 다른 표현으로 <유로존 Euro Zone의 위기>라고도 부른다. 그리스를 비롯하여 작년에는 유럽의 5대 부유국 가운데 하나인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듯 한데 전문가들은 유럽의 경제위기에 대하여 끝이 났다는 의견과 아직 이르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져 있다.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위기는 지나갔다”고 선언을 했지만,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끝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이런 양국의 정상이 내 놓은 의견을 놓고 프랑스의 프랑수아 라슐린 경제학 교수(파리정치대학)는 “두 사람 모두 옳다”라고 하였다. 이 교수는 유럽이 경제위기를 빠져나갈 대응 방법을 찾았고 올바른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끝났다”는 의견이 옳고, 반면 현재의 상황이 정상적인 유로존 재건을 위한 초기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옳다는 것이다.
프랑수아 라슐린 교수는 유로존 해체 또는 재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유로존에서 탈퇴한다고 당장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은 재정 위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다. 이제 서구는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사회 경제적 모델을 새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거창하게 유로존을 언급하고 유럽의 경제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나 한국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잣대와 더 나아가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개인의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먼저, 현 사회 구조나 경제 구조에 대하여 불평을 하기 보다는 인정을 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잘못된 부분은 고쳐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한국이 조금 더 심할 것 같은데(자세한 것은 짐작이 안 되지만)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정책을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대학 등록금 반값 정책이다. 뜻은 좋지만 재원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조금 하다가 힘들면 또 바꾸겠는가? 유럽의 경제위기를 맞이한 나라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유로존이 없었다면 그리스와 같은 나라는 헤어나오지 못할 나락으로 빠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수입이 줄어들고 삶의 여유가 없어졌다고 직장을 옮기거나 사업을 해 보겠다고 쉽게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은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씀씀이를 줄이고 절약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문제를 파악했으면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고 소망을 갖는 것이다. 허풍이 아니라면 프랑스 대통령처럼 국민에게 소망을 주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를 100% 신뢰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삶의 희망을, 최소한 불씨를 보게 할 것이다. 미국에서 99% 대 1%의 주제로 오랫동안 군중시위가 있었다. 만일 이때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후에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일어날 수 있다”고 함께 말을 했다면 국민들은 최소한 희망의 불씨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에는 불경기가 끝이 났다고 말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멀었다고 말을 하니 국민들을 혼동 속에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도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면 더욱 성실한 마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파악했다 할지라도 자만하지 않고 성실하게 생활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문제의 원인을 찾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할지라도 아직은 초기 단계이니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독일 총리의 말은 꼭 귀담아 들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제 살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해서 또 다시 흥청망청의 모습으로 가서는 안 된다. 위정자들이 부패와 부정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고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 분배를 먼저 챙기고, 연봉을 더 올리려는 사욕의 모습이 있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나눌 수 있는 지도자들이어야 한다. 개인의 경우는 예를 들어보자. 취직을 하거나 새로 가게를 열었다고 첫 달부터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고 고급 주택을 구입해서는 안 된다. 이제 초기 단계임을 기억해서 절약을 하고, 재투자를 염두에 두고 성실한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파푸아 뉴기니의 어느 부족의 추장을 빅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빅맨은 “우리 부족 가운데 집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빅맨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내어서 부족 사람들과 함께 집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준다. 문명에 뒤떨어진 곳이라고 서방국가, 아니 우리들조차도 이들을 무시할 것인가? 부의 상징이라는 미국에 중산층이 사라지며 빈부의 격차가 극화되면서 굶고 집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이 빅맨이 있는 부족에는 굶는 사람이 없다. 집 없는 사람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방국가들처럼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고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유로존을 바라보며 인간의 욕심을 보아야 하고, 다시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유로존을 보면서 성실을 배워야할 것이다.